쓴귤님 포스팅에서 트랙백했습니다.
나는 어릴 때 굉장히 많이 맞았다. 횟수보다는, 한 번 맞으면 아주 독하게 맞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엄마가 폭력적인 사람이었냐하면, 절대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AB형의 전형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엄마는, 화나기 전 단계가 없는 사람으로, 보통 엄마들이 화내기 전에 표정이 굳는다거나, 경고를 하는 등의 행동을 보이는 데 반해, 폭발하기 일보직전까지 웃으며 바라보는 타입이었다.
따라서 어리고 눈치없는 나는 엄마가 언제 터질지도 모른 채, 여러가지 철딱서니없는 짓거리를 해댔다.
그러나 엄마가 결코 폭력적이지 않았던 만큼, 나도 절대 산만하거나 말썽을 피우는 아이는 아니었다. 어릴 때 많이들 한다는 좀도둑질이나 폭력 사태 등도 한 번도 일으킨 적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내가 원래 그런 아이여서인지, 작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의 처벌을 생각하면 더 큰 잘못을 했을 때 내가 살아남기 힘드리라는 동물적 본능에서인지는 알기 힘든 것 같다.
내가 맞았던 기억이 선명한 몇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해 볼까.
1. 7살 크리스마스
미술학원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다. 원생들은 하얀 타이즈에 흰 블라우스만 입고 얼굴에는 화장을 하고 반짝이로 만든 머리 장식을 쓰고 손에는 촛불을 쌍으로 들고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며 무대에서 춤을 춰야 했다.
그런데 타이즈 위에 아무것도 입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과, 화장을 한 내 얼굴이 아주 이상해 보였다는 것에 캐분노한 어린 아스모는 화장을 하지 않겠다고 엄마에게 떼를 쓰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블라우스 밑에 치마를 입겠다고 할만한 배짱은 없었나보다. 화장은 안해도 눈에 안띄지만, 혼자 치마 입으면 엄청 눈에 띄었을테니.
어쨌든 어린 아스모의 발악에 엄마는 머리를 말아주던 드라이용 롤빗을 그러쥐었다. 아, 그 때 엄마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캐치해낼 수만 있었다면....!!!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무로 만든 롤빗이 두동강이 났고, 어린 아스모는 퉁퉁 부은 눈에 파란 섀도우와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흰 타이즈 차림으로 무대에 서야만 했다.
2. 중학교 자살 소동
사춘기가 찾아온 소녀 아스모는 반항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무심코 "나, 죽어버릴거야!" 라고 소리치고 피아노를 도움닫기대 삼아 창문으로 뛰어 올랐다. (참고로 아스모의 집은 3층이다 -_-;;;)
그런데 순간 엄마가 전광석화처럼 뛰어들어 소녀 아스모의 발목을 낚아 채, 내동댕이쳤다.
어라? 하는 찰나 소녀 아스모는 피아노에 1차로 부딪힌 후, 방바닥 구석으로 낙하했다. 그리고 눈 앞에 보인 것은 노란색 도끼빗이었다.
그리고 한참동안 두드려 맞으면서 소녀 아스모는 생각했다.
"..............차라리 떨어지게 놔두지. 이러다 맞아 죽겠네."
그 날 역시, 빗이 부러진 후에야 맞는 것은 끝났다.
가장 명확하게 생각나는 것은 이 두 가지이다.
물론 나는 몇번이고 엄마에게 웃으면서 저런 얘기를 했다. "엄마, 기억하우? 그 때 빗이 부러지게 나를 때렸지~~" 엄마도 결코 지지 않는다. "맞을 짓 하면 맞아야지."
엄마의 교육 철학은 아주 분명했다. <잘하면 칭찬을, 잘못하면 벌을.> <자식과의 타협은 절대 없다.> 가 그것이다.
그리고 해 줄 만한 것은 처음부터 해 주고, 안되는 것은 골백번을 요구해도 절대 들어주지 않았다.
엄마가 한 번 안된다고 하면 안되는 것이었다. 반면 쭈뼛거리며 "엄마 나 이것 좀 사 줘요"라고 말을 꺼내도, 흔쾌히 해주는 경우 또한 적지 않았다. 그리고 안되면 이유를 설명했지, 잔소리를 하지도 않고 혼을 내지도 않았기에, 나는 엄마에게 일단 말을 하고 보는 그런 아이가 되었다. 부모와의 대화 단절 이런 건 내 인생엔 없었다. ^^
또 "이거 하면 선물 사줄게" 같은 말도 절대 하지 않았다.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것에 대가를 지불할 수 없다고 딱 잘라 말씀하셨더랬다.
나는 매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리고 말 귀 못 알아듣는 짐승과 아이는 좀 패야 알아듣는 경우도 있다. -ㅅ-;;; (설마 이런다고 나를 동물학대자에 아동학대범으로 몰아가는 희한한 사람들은 없겠지....)
엄마가 잘못에 엄중한 처벌을 했기에, 나는 큰 잘못은 하지 않고 자랐으며, 당시에는 너무 분하고 슬프고 정말 내가 주워온 자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지만, 지금 와서는 절대 원한이나 원망따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 원망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저 기억은 이상하리만치 선명하다.
아참.....................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내가 못해본 게 하나 있다.
바로 상점이나 길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떼 쓰는 것.
그런 짓을 하는 동년배 아이들을 바라보며, 어린 아스모는 "내가 저런 짓을 했다가는 분명 엄마는 나를 어디 갖다 버릴 거야" 혹은 "죽으려면 뭔 짓을 못 해."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20살이 넘어서 엄마랑 쇼핑을 가면 가끔 해 보았다.
아, 물론 진짜로 구른 것은 아니고.... 그냥 장난처럼. "엄마, 나 여기서 구른다? 눕는다?"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 살짝 살짝 발을 굴러본 바닥에서 느껴지는 진동이 나름 자극적이었다. ^^;;;;;;
아마 이런 행동을 해도 엄마가 그냥 웃고 넘어간다는 사실이 준 안도감 또한 그 쾌감에 한 몫 했으리라.